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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음식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11월의 식재료 ‘잣’

 


농촌진흥청이 배추대추와 함께 11월의 식재료로 선정한 것이 잣이다. 잣나무는 소나뭇과 소나무 속에 속하는 한국 고유 수종으로, 상록 침엽수다. 홍송이라고도 부른다. 심은 지 15년가량 지나면 잣을 얻을 수 있다.

 

잣 수확은 사람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수십 미터 높이의 나무에 오르는 것이 워낙 위험하고 힘들어, 여러 대안을 시도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를 훈련해 잣 수확 작업에 투입하기도 했다. 잣나무에서 한 번 내려온 원숭이가 손에 묻은 송진을 보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아 역시 실패로 끝났다.

 

 

대형 헬기나 열기구를 사용해 따보려고 했지만, 비용효율성이 떨어져 중단됐다. 결국 현재도 사람이 일일이 올라가 잣을 따고 있다. 잣이 비싼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부터 잣은 워낙 귀하고 비싸서 잣이 나는 지방 원님도 잣죽은 거의 못 먹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잣나무는 소나뭇과() 중에서 씨가 가장 큰 나무다. 이 나무의 씨가 바로 잣이다. 솔방울처럼 생긴 커다란 잣송이엔 피잣이 들어 있다. 피잣은 아직 딱딱한 껍질에 덮여 있다. 피잣의 껍질을 제거하면 그 안에 얇은 노란색 껍질에 담긴 잣이 나온다. 속껍질까지 벗긴 것이 노란빛이 돌면서 뽀얀 잣, 백잣이다.

 

잣은 겉이 딱딱한 견과류의 일종이다. 예부터 기운이 없거나 입맛이 없을 때 원기회복 음식으로 애용됐다. 잣죽은 요즘도 아픈 사람에게 흔히 추천하는 음식이다.

 

 

잣송이의 겉이 딱딱한 데다 점액까지 나와 잣은 까먹기가 힘든 식품이다. 입에 넣기까지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잣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은 오돌오돌하고 부드러운 맛 때문이다. 잣은 잣죽수정과식혜강정 등 전통 음식의 식재료, 특히 고명으로 흔히 쓰인다. 앵두화채수박화채 등 화채를 만들 때 마지막에 잣을 띄웠다. 수정과과자 등에 넣어 먹기도 한다.

 

경기도 가평의 향토 음식인 잣국수도 유명하다. 잣을 곱게 갈아 만든 잣육수를 국수 면발에 붓거나 면발에 잣가루를 섞는다. 가평에선 잣묵잣곰탕잣막걸리까지 만든다. 가평은 전국 잣 생산의 40%, 잣 유통의 80%를 차지하는 잣 고을이다. 경북에선 떡에 잣가루를 묻힌 잣구리도 즐겨 먹는다.

 

잣은 정월 대보름 절식(節食)인 ‘부럼’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날 밤에 날밤호두은행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이 ‘부스럼(부럼) 깨물기’다.

 

 

인류가 잣을 먹기 시작한 것은 석기 시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자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남부 프랑스의 동굴에서도 잣 흔적이 발견됐다.

 

잣은 이탈리아 요리에서 쓰임새가 많은 식재료다. 피뇰리(pignoli)라고 불리는 잣은 페스토쿠키 등을 만들 때 쓴다. 특히 바질 페스토엔 거의 빼놓지 않는다. 잣의 영어단어인 파인넛(Pine nuts)도 피뇰리에서 유래했다. 엄밀히 말하면 피뇰리는 유럽 잣(Pinus pinea)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은 한국 잣으로 학명(Pinus koraiensis)도 다르다. 영어명도 ‘코리안 파인넛’(Korean pine nut)이다. 중국에선 신라송(新羅松)이라 불린다. 일본에선 잣나무를 ‘조센마쓰’(조선 소나무란 뜻)라 한다.

 

 

영양적으론 고지방 식품이다. 마른 잣은 100g당 지방 함량이 61.5g(볶은 것은 75g)에 달한다.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지방의 대부분이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이기 때문이다. 잣에 함유된 지방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cholecystokinin)의 분비를 도와 음식 섭취량을 최대 37%까지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미국에서 나왔다. 같은 연구에서 잣은 과체중폐경 여성의 입맛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잣을 먹을 때 불포화 지방이 산패(酸敗)하면 유해 물질인 과산화 지질이 생긴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잣은 공기와 닿지 않도록 철저하게 밀폐하고 구매 후 가능한 한 빨리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불포화지방도 지방이다. 1g 9㎉의 열량을 낸다. 마른 잣 100g의 열량은 640(볶은 것 708)에 달한다. 양껏 먹다간 다이어트는 물 건너간다. 한편, 잣이 들어간 잣죽과 잣두부는 지방 함량이 각각 0.9g∙4.3g, 열량이 31∙86㎉에 불과한 다이어트 식품이다.

 

잣엔 혈압 조절을 돕는 미네랄인 칼륨도 풍부하다. 고혈압 환자의 간식거리로 권할 만하다. 뇌세포를 활성화하는 레시틴이 많이 함유돼 있어 두뇌 발달은 물론 기억력 증진과 치매 예방도 돕는다.

 

‘동의보감’엔 잣이 “기혈(氣血)을 보()하고 폐 기능을 도와 기침을 멈추게 하며 내장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민간에선 겨울에 피부가 건조해져 각질가려움증이 생기면 잣을 매일 10알가량 꾸준히 먹으라고 권장했다.

 

 

잣은 윤기가 흐르고 밝은 노란색을 띠는 것이 상품이다. 모양이 세로로 길고 표면이 매끈하면서 알이 통통한 것을 고른다. 국산 잣에선 윤기가 난다. 씨눈 덮개가 거의 없고 겉면에 상처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잣나무 향과 송진 향이 감돈다. 수입 잣은 윤기가 적다. 씨눈 덮개가 붙은 것이 많다. 상처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래 보관하면 진한 갈색으로 바뀐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속껍질이 붙은 상태에서 냉장 보관한다. 냉동 보관도 가능하다. 잣은 드물지만, PMS(Pine Mouth Syndrome)란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한다. 잣을 먹은 뒤 음식에서 쓰고 금속성 맛이 느껴지는 것이 PMS의 주 증상이다.

 

이 증상은 수 주간 지속될 수 있지만,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 꽃가루에 노출되거나 땅콩을 먹은 뒤 알레르기를 일으킨 적이 있다면 잣 섭취 뒤에도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도 있어 적당한 양(하루 1015)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