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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비언어적 의사소통과 정신건강

 

 

 

 

       언어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통한 자기표현이다. 현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언어 못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고 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바로 비언어적 단서다. 얼굴표정이나

       눈짓, 손짓과 몸의 자세, 시선을 들 수 있다. 이런 비언어적 단서를 잘 읽는 것은 정신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눈치와 비언어적 의사소통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마음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서양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할 때 “불안해”, “우울해”라면서 직접 표현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몸이 안좋아”, “머리가 아파”라면서 마음이 아닌 몸의 증상으로 돌려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비언어적 단서도 이런 간접 표현 방식의 하나다. 화가 났을 경우 말로 직접 표현하기보다는 문을 쾅 닫는다던지, 인상을 찌푸린다던지 한다. 구구절절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하여, 자신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1989년 TV전파를 탔던 ○○파이 CF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걸”

 

혹자는 어떻게 말하지 않아도 아느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문화에서는 타인의 비언어적 단서를 제대로 읽고 반응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자 덕목이다. 이런 사람은 소위 눈치있는 사람, 그래서 사회생활 잘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심리학자 최상진은 한국의 문화를 눈치문화라고 분석하며,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눈치가 발달한 나라도 없다고 말했다. 눈치는 서양에는 없는 개념이라 영어로도 nunchi라고 표현한다.

 

 

 

대인관계, 불안과 우울

 

‘눈치 있으면 절간에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비언어적 단서를 잘 읽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러나 비언어적 단서를 틀리게 읽는다면 불난 집에 휘발유를 뿌리는 결과가 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에 대한 호감의 웃음을 비웃음으로 받아들이거나, 이와 반대로 비웃음을 호감의 웃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멀리하게 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애쓸 것이다. 당연히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타인의 눈치를 계속 보게 되고, 불안과 우울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눈치가 없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는 이유는 비언어적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인 환경에 오랜 시간 처해 있던 사람들이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올바른 해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눈치를 제대로 보기 위해

 

비언어적 단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할까? 가까운 사이라면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다.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나 허물없이 지내는 직장동료 사이라면 가능하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따지듯이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너 지금 그게 무슨 표정이니!”라고 표독스럽게 물으면 상대방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화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널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데, 지금 나한테 어떤 마음이야? 불편하더라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면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는데 누가 외면하겠는가?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이런 질문을 하기가 어렵다. 직장 상사나 거래처 사람에게 표정의 의미를 물어볼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럴 경우는 상대방의 비언어적 단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고, 더 많은 증거를 찾아보자. 상대의 웃음이 비웃음이라면 다른 면에서도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과 언사를 더 많이 할 것이고, 호감의 웃음이라면 이와 반대의 증거를 얻을 것이다. 상사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화가 나 있다면 자신에게 계속 짜증을 내겠지만, 자기 집안 일 때문이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짜증을 내거나 조퇴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섣불리 판단하지만 않고 더 많은 정보를 모아도 비교적 정확하게 비언어적 단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혹자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이다. 한국에 사는 이상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눈치, 절간에서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 있는 눈치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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