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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생물학적 독극물, 가습기 살균제 사건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biocide) 사건’(2014년 질병관리본부 폐손상 조사위원회에서 발간한 백서 중)이다. 바이오사이드란 생물학적 독극물을 말한다.


사건은 2011년 봄 대형 병원에서 젊은 임산부들 사이에서 원인 불명의 폐손상 사망 사례가 속출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임산부ㆍ어린이 등을 포함한 142명이 폐 섬유화로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숨졌다. 살아남은 사람은 폐 이식 수술 등을 통해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 치료가 별 소용이 없었고 급속도로 악화되다가 상당수는 숨을 거뒀다. 보건당국이 원인 불명의 ‘괴질’을 잡기 위해 병이 왜, 어떤 경로를 밟아 생겼는지 파악하는 일에 나섰다. 그해 5월 질병관리본부ㆍ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을 중심으로 합동 역학조사팀이 꾸려졌다. 역학조사팀은 폐질환의 원인이 실내에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피해자의 주류인 임산부ㆍ아이가 대부분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그렇게 본 근거였다. 피해자의 방 안을 살피던 역학조사팀의 눈에 가습기가 들어왔다.


한 달 쯤 뒤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사건의 ‘주범’은 가습기가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라고 콕 짚어서 지목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원인 불명의 폐 질환에 걸릴 위험이 가습기 살균제 없이 생활하는 사람의 47.3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증거로 제시했다.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 사이에 분명한 인과(因果) 관계가 있다고 판정한 것이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 환자가 될 위험이 비(非)흡연자의 10배, 몸에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소지하고 있으면 간암에 걸릴 위험이 건강한 사람의 20배 정도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이라고 밝힌 역학조사팀은 2011년 발표 당시 칭찬보다 공격을 더 많이 받았다. ‘성급했다’, ‘근거가 부족하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실험동물을 이용한 독성 연구를 생략한 채 역학조사 결과만으로 ‘최종 판정’을 내린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습기에서 나오는 수증기의 입자 크기가 커서 가습기 살균제 유해 성분이 모세 기관지를 지나 폐포까지 침투할 수 없다는 반론도 나왔다. 나중에 실제 방 크기의 공간에서 실험을 해 보니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극미한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을 떠다녔다. 폐포 말단까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된 것은 1994년부터다. 그 후 우리 국민 800만여 명이 사용했다. 2011년에 와서야 환자가 발생한 이유, 500여명에게만 증상이 나타난 이유,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선 피해가 없었던 이유 등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2011년 이전에도 발생했을 것이지만 아무도 모르고 지나쳤을 뿐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1년ㆍ2006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고 2001년 이전엔 전자의무기록이 없어 피해 사실 자체가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2011년에 피해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그해 겨울 날씨가 추워서 실내에서 가습기 사용이 증가한데다 2009년 신종플루의 여파로 대중의 위생 의식이 높아져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량이 늘어난 것도 났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가습기 살균제 이용자 중 500여명에게만 피해가 확인된 것은 개인의 유전자나 알레르기 등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고가 유독 한국에서만 발생한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가습기를 열성적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없고, 문제된 가습기 살균제가 한국 내에서만 판매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피해자 중엔 한 주(週)에 7일 모두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하루에 11시간 이상 쓴 사람이 많았다. 가습기를 장기간 사용한 사람보다는 단기간이라도 집중적으로 쓴 사람에서 피해가 컸다. 가습기 살균제의 첫 노출이 4세 이전이거나 가습기 살균제의 공기 중 농도가 1㎥당 800㎍ 이상일 때 사망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은 유독 가습기를 많이 사용한다. 성균관대 의대 연구팀이 경기도민 9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가습기를 사용하는 비율이 37.2%(35명), 가습기 살균제를 쓰는 비율이 18.1%에 달했다. 가습기 이용자 2명 중 1명꼴로 가습기 살균제를 이용하는 셈이다. 가습기의 평균 사용 빈도는 주(週) 4.8회, 가습기 살균제 사용 횟수는 주 2.4회였다. 월별론 10월부터 사용이 늘기 시작해 이듬해 1월에 정점을 찍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가습기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가습기 사용을 중지하고 빨래 널기 등 천연 가습법을 사용하는 가정도 늘었다. 가습기를 청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체(미생물)의 증식을 차단하는 것이다. 가습기를 바닥에 두면 실내 습도가 높아지면서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가습기는 바닥에서부터 0.5∼1m 높이의 평평한 받침대나 선반에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얼굴과 최소 1m 이상 거리를 두고, 실내에서 최대한 먼 곳에 가습기를 두는 것이 좋다. 방문을 연 채 거실에서 가습기를 트는 것도 방법이다. 가습기엔 정수기 물이나 끓였다가 식힌 깨끗한 물을 넣는다. 물은 반드시 하루 한 번 갈아 주고, 주 1회 이상 세척한다.


가습기 청소를 할 때 가볍게 물통을 헹구듯이 흉내만 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론 훨씬 세심한 청소가 필요하다. 가습기 물통엔 늘 물이 고여 있어 세균ㆍ곰팡이가 번식하기 쉬운 상태다. 물통에 적당량(1/4 가량)의 물을 채운 뒤 뚜껑을 닫고 4∼5회 세게 흔들어 세척한 다음 밤새 바짝 말리는 것이 좋다. 본채 안쪽은 부드러운 스펀지로 여러 차례 닦고, 부드러운 청소 브러시를 이용해 구석구석 청소한다.





세척할 때 가습기 살균제는 물론 비누ㆍ세제의 사용도 최대한 피한다. 가습기를 오래 틀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가습기를 장시간 틀어 놓으면 실내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세균ㆍ집먼지진드기 등이 자라기 쉽다. 잠들기 30분∼1시간 전에 켜고 아침에 일어나선 끄는 것이 적당하다. 실내습도는 50∼60%로 유지한다.


낮 시간대에 가습기를 틀 때는 2시간 이상 사용을 삼간다. 가습기 사용 중이나 사용 후엔 환기를 자주 시킨다. 가습기 사용 후 환기를 하지 않으면 뿜어져 나온 수분이 호흡기ㆍ피부를 촉촉하게 하기도 하지만 벽지ㆍ이불ㆍ카펫 등에 스며들어 세균ㆍ집먼지진드기의 증식을 돕는다. 영ㆍ유아가 있는 가정이라면 습도계를 사용해 적정 습도를 유지한다.





임산부ㆍ노약자가 있는 가정에선 가습기의 종류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가습기는 초음파식ㆍ가열식ㆍ복합식ㆍ자연증발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물을 직접 끓여 수증기를 내뿜는 것이 가열식이다. 실내온도와 실내습도를 동시에 올려 어린이ㆍ노약자ㆍ감기 환자에게 이롭다. 영ㆍ유아가 있는 가정에선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뜨거운 수증기로 인해 아이가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어서다. 물을 끓여 살균시킨 후 초음파를 이용해 뿜어주는 것이 복합식이다. 실내의 건조한 정도에 따라 물이 자연적으로 증발해 최적 습도인 40∼60%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증발식이다.


복합식이나 자연증발식 가습기를 고르면 화상 위험은 줄일 수 있다. 복합식 가습기는 차가운 가습ㆍ따뜻한 가습 기능을 구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자연증발식 가습기는 눅눅한 느낌 없이 쾌적한 실내 공기를 유지시키다. 주 1회 정도 청소하면 청결하게 사용할 수 있다. 수증기 배출량이 적고 필터를 자주 교체해 줘야 한다는 것이 약점이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