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가 비스페놀 A(환경호르몬 의심물질)에 약간만 노출돼도 아기가 비만해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캐나다 칼턴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최근 미디어에 보도되면서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높아졌다.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 든 플라스틱 용기를 피하려면 용기 밑에 쓰인 숫자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플라스틱 용기 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각 화살표 안에 숫자가 쓰여 있다. 이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재질별로 재활용성을 분류한 기준(recycle symbol)이다. 여기서 2번(HDPE), 4번(LDPE), 5번(PP)은 식품 용기로 사용하기에 안전한 플라스틱 소재다. 2번, 4번, 5번에선 환경호르몬이나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새 나오지 않는다. 2번과 5번은 열에 강한 플라스틱 소재로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하다.
3번(PVC), 6번(PS), 7번(PC)은 업소용 랩 등에 사용하는 소재로 내열성이 낮아 고온에서 녹을 수 있으므로 전자레인지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3번, 6번, 7번은 잘못 사용할 경우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수 있다.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3번에 함유된 가소제인 DEHP는 환경호르몬이면서 발암물질이다. PVC 소재의 비닐 랩이 열에 노출되면 DEHP가 나올 수 있다. 6번엔 1군 발암물질인 벤젠이 들어 있다. 6번에 든 부타디엔과 스티렌 등도 발암가능물질이다. 7번에 든 비스페놀 A는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다. 7번이라도 ‘트라이탄, 비스프리’ 등 비스페놀 A가 들어 있지 않은 플라스틱도 있다.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식품이 닿으면 환경호르몬이 녹아 나올까? 꼭 그렇진 않다. 국내 소비자가 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조리기구나 용기의 주재료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등이다. 이들은 프탈레이트ㆍ비스페놀 A 등 환경호르몬 의심 물질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뜨거운 식품을 이런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도 환경호르몬이 녹아 나오지 않는다.
PVC 소재의 랩 제품을 사용할 때는 프탈레이트 등 가소제 성분이 녹아나오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100도를 초과하지 않은 음식에만 사용하고, 지방ㆍ알코올 성분이 많은 식품엔 직접 접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플라스틱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도 환경호르몬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자레인지용 플라스틱 그릇의 소재인 폴리프로필렌(PP)과 결정화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C-PET)엔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프탈레이트나 비스페놀 A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는 플라스틱 그릇을 가열하지 않는다.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음식물을 가열하는 주방 용품이 전자레인지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가열할 수 있는 것은 물 분자가 극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액체 상태의 물 분자들은 방향이 제멋대로이고 유동적이다. 이런 물을 강한 전기장 속에 넣으면 물 분자들은 전기장과 나란해지려는 방향으로 회전한다. 물 분자가 돌면서 다른 물 분자와 충돌하며 이 충돌을 통해 물 분자의 운동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한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는 물을 가열시키기에 적당한 주파수에 맞춰져 있다. 물기가 없는 유리컵이나 플라스틱 그릇 등은 가열되지 않는다. 전자레인지로 커피를 끓이면 커피는 뜨겁지만 커피 잔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플라스틱 그릇이나 즉석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조리할 때는 ‘전자레인지용’으로 표시된 제품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사용한다.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에 의해 플라스틱 그릇이 파손될 수도 있어서다. 열에 약한 플라스틱 그릇은 불이나 뜨거운 물체 가까이에 놓거나 직접 가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컵라면ㆍ요구르트 용기에 사용하는 폴리스티렌(PS)은 내열성이 낮아 고온에서 녹을 수도 있다. 스티로폼(발포 폴리스티렌) 제품도 내열 온도가 비교적 낮아 기름기가 많은 돈가스ㆍ튀김 등을 튀겨낸 후 바로 담으면 고온의 기름으로 인해 변형이 생긴다. 원료물질로 사용된 포름알데히드가 고온에서 용출될 우려도 있다. 멜라민수지ㆍ페놀수지ㆍ요소수지 같은 플라스틱을 전자레인지에 넣어선 안 되는 것은 그래서다.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찌그러지지만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의 용출과는 관련이 없다. 탄산음료나 생수병을 페트로 만들 때는 열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50도만 약간 넘어도 페트병이 변형된다.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으면 찌그러지거나 하얗게 변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는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의 용출과는 무관하므로 안심해도 된다. 같은 페트병이라도 열처리 과정을 거친 오렌지주스 병엔 90도 정도의 뜨거운 물을 담아도 병이 변형되지 않는다.
페트병은 원료인 쌀알 크기의 페트 칩(chip)을 녹인 뒤 공기를 불어넣어 만든다. 제조할 때 프탈레이트ㆍ비스페놀 A 등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식약처의 검사 결과 페트병에서 비스페놀 Aㆍ프탈레이트 등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은 일체 검출되지 않았다. 페트병에 든 음료 등을 유통ㆍ보관할 때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일회용 종이컵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것은 맞지만 환경호르몬과는 무관하다. 물이나 커피 등을 담았을 때 액체가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식품과 접촉하는 내면에 코팅을 한다. 일회용 종이컵의 코팅제인 폴리에틸렌(PE)이 플라스틱에 속한다. PE가 녹는 온도는 105∼110도로, 물이 끓는 온도인 100도보다 높다. PE를 코팅제로 사용한 종이컵에 끓는 물을 담아도 PE가 거의 녹아 나오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만에 하나 극미량의 PE가 물에 녹아 나온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PE는 분자량이 매우 큰 고분자 물질이어서 체내에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회용 종이컵에 물이나 커피 등을 담아 전자레인지에서 데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튀김ㆍ순대 등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종이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서 데우면 음식 내 기름의 온도가 PE가 녹는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 PE가 녹거나 종이로부터 PE가 벗겨질 수 있다. 일회용 종이컵에선 환경호르몬인 DEHP가 검출되지 않는다. 종이컵 코팅에 쓰이는 PE는 원래부터 유연한 성질이어서 굳이 DEHP 같은 가소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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