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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가족의 커다란 힘이 되는 아기 태명을 아시나요? 작년이맘 때 쯤 신랑 사업이 부도가 났다. 그런데 작년 8월에 둘째아이까지 들어섰다. 5년 동안 아무 소식 없던 아기가 이 어려운 시기에 느닷없이 계획 없이 생겨버린 것이다. 기쁨과 걱정이 교차하며 어떡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랑에게 이 기쁜 소식조차 전하기도 미안했고, 이 아기를 포기하자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병원을 다녀와 며칠을 망설이다 신랑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 놓았다. 깜짝 놀라며 반기던 신랑의 모습에 그제야 난 너무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또 느낄 수 있었다. 내 앞에선 웃으며 반기던 그 모습 뒤에 숨겨진 부담과 걱정들, 얘기가 끝난 뒤 조용히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무는 신랑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가여운 집안의 가장들,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더보기
작년 다이어리를 보며 눈물 흘렸던 사연   작년 초에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조금만 쉰 후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제 뜻대로만 되지 않았죠. 3개월 동안 쉬었다가, 선배들에게 전화도 해보고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데도 취직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그래 분명히 나를 알아주는 곳이 따로 있을 거야라면서 그냥 곧 있으면 바로 취업이 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한해가 다 갔습니다. 거기에다가 경제도 어려워지면서, 나라 안팎으로 불안감도 가중되다 보니 이제, 이력서를 쓰는 것도 지쳐가고 취업이 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작년 한 해, 이력서만 무려 100통을 넘게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습니다. 12월 31일에는 정말 이제는 취업하는 .. 더보기
비좁고, 답답한 지하철 출근길이 우울하지 않는 이유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날은 앞사람을 뒤에서 힘껏 밀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는 말도 있지만 탈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일단 타기로 결정하고 앞 사람을 미는 순간 쇼핑백이 선로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 아저씨, 가방 떨어졌어요.”한 아주머니가 안타깝다는 듯 걱정을 했다. 가방 안에는 오늘 당장 제출해야 할 보고서와 애지중지 아끼는 수첩 그리고 안경이 있었기에 다음 열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역무실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다. “저어, 가방이 선로 밑에 떨어졌는데요.” “어디예요. 어디.” 오히려 나보다 더 걱정을 하며 한 공익근무요원이 황급히 떨어진 장소로 갈 것을 재촉했다. 그 분은 위험을 무릅쓰고 .. 더보기
갑자기 사라진 마사지사의 이유 동네 목욕탕에 갈 때마다 자신이‘백말 띠’라며 띠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마사지사 언니가 있다. 동네사람들이 애용하는 목욕탕인데 우리가 그냥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는 백말 띠로 인해 팔자가 드셀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지금 때밀이가 직업이 된 것 같다며 재미있는 수다를 떠 는 마사지사다. 그녀는 그 목욕탕 4명의 마사지사 중 대장 격이었다. 나이가 가장 위이기도 했지만 곱상한 얼굴에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분위기 조성을 잘했다. 그 목욕탕에서만 7년 차라고 했다. 그런데 동네 아줌마들로부터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진짜 이유는 딴데 있었다. 그녀의 착한 심성 탓이었다. 우리네 젊은 아줌마들의 때를 밀 때는 당연히 돈을 받지만 혼자 오신 할머니 손님이 계시면 반드시 모셔다가 때밀이 무료 .. 더보기
우리 딸 물텀벙이처럼 태어날 뻔한 사연 나는 결혼을 늦게 한 데다 2년이 지나서 임신을 했는데 입덧은 다른 사람보다 유별났다. 온종일, 아니 잠을 자도 눈앞에 먹는 것만 보였다. 입의 변덕이 죽 끓듯해서 금방 먹고 싶다가도 얼마 뒤면 그 음식 떠올리기가 싫고 그러다가 한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른한 상태로 TV를 보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인데 언제 퇴근했는지 남편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손질하고 있는 재료는 해물이었다.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워낙 봐줄 것 없이 생겨먹은 꼴에다가 살도 붙질 않아서 생선 축에도 못 끼던 고기다. 평소엔 징그럽게 느껴지더니만 오늘은 아직 날 것인 채 손질을 하는 중인데도 내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낙 .. 더보기
가장 아름다운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다면? 졸업과 입학의 시즌을 보내고 나니 3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우리 ‘한마음회’ 에서 성희를 만난 게 3년 전, 그때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있던 그 아이는 나이가 19살이었는데 중학교를 중퇴한 상황이었다. 또래들이 놀리고 적응이 안 되자 아예 때려치우고 보호 시설에 들어와 다른 중증 장애인들을 보살피며 생활하고 있었다. “공부도 잘했는데… 애들이 막 놀리잖아요. ‘ 애자’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그냥 나와 버렸어요. 집에서 놀았더니 맘도 편했어요. 에이, 학교는 가기 싫어요.” 하루아침에 배움이라는 희망의 날개가 꺾여버린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성희라는 그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여사원 봉사활동 모임인 우리 한마음회에서 처음 갔을 때 야무지고 똑 부러진 표정으로 말하던 성희. ‘애자.. 더보기
[독자참여] 내가 학창시절 헌혈을 시작하게 된 이유 “저어, 헌혈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웃는 얼굴로 간호사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저씨, 여기 좀 잘 읽어 보시고 헌혈을 하셔야 합니다.”라며 헌혈을 하면 안 되는 특정 지역에 2년 이상 거주하며 밤을 지새웠던 경험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무조건 헌혈을 권하던 예전과는 달리 꼼꼼하게 건강상태도 체크하고 까다로운 기준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고 많이 흐뭇했다. 나이는 속일 수 없어 옛날에는 거침없이 팔을 걷어붙였지만 겁도 나고 혹시나 다른 문제는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헌혈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헌혈을 시작한 연유는 참 우습기만 하다. 식성이 워낙 좋아서 무엇이나 먹을 것으로 보였던 고등학교 시절, 헌혈을 하면 빵을 준다는 유혹에 처음으로 헌혈을 시작하여 그 후로 헌.. 더보기
[독자참여] 아파트 위층 소음이 그리 시끄럽지 않은 이유 며칠 전 저녁이었다. 저녁 아홉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현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고 보니 우리 위 층에 사는 아기 아빠였다. 처음 이사 왔다고 돌 전 쯤으로 보이는 아기를 안고 떡을 돌렸었다. 바쁜 아침에는 나와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놓칠 뻔할 때 버튼을 눌러 주기도 하고 서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며 그렇게 얼굴을 알고 지내는 터였다. “놀라셨죠?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걸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단 말로 말문을 여는데 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 “저희가 쓰려고 사뒀던 음식점의 상품권이 기한 내에 쓰지 못하고 버려질 것 같아서요. 평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던 아래층에 드리자고 아내와 상의해서 찾아왔습니다. 부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들과.. 더보기
[독자참여] 명절날때마다 찾아오는 어머니의 산타양말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 매년 추석과 설날에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하신다. 처음 시집오던 해부터 받았으니 어언 십 년이 넘게 이어져온 선물의 역사다. 몸이 편찮으시거나 아무리 바쁜 일이 있을 때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장으로 가셔서 식구들 수만큼의 양말을 사오셨다. 사실 처음엔 어머니의 양말선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느 어머니들 또한 명절이 되면 으레 자식들의 명절빔이나 양말 한 켤레 정도 준비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작년 설 때의 일이다. 당시 어머니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 더보기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마음의 길 여행 어린 시절에 심심하면 혼자 하던 놀이가 있었습니다. 일명‘길 잃어버리기’놀이입니다. 방법은 무지 간단합니다. 무작정 집을 나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을 가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곳이라 해도 결국 부처님 손 바닥 이 었겠지만 그 시절에는 매번 설레고 가슴이 조마조마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된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 놀이는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 번도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으니까요. 길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지만 조금 헤매다가 이내 길을 찾았고, 정 모르면 사람들 에게 물어보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길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점점 더 멀리 갈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이 과연 나의 길인가? 이제 내비게.. 더보기